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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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강요된 밤노동·방치된 안전… 60% “주간 근무 원해” [탐사기획-당신이 잠든 사이]

(3회) 환경미화원이 쓰러진다

미화원 536명 설문
교통 체증·악취 민원에 야간 근무行
“안 다치면 운 좋아”… 안전 우려 최다
“저녁 없는 삶” “늘 수면 부족” 호소
27%는 “민원 없는 밤근무가 편해”
환경미화 포스트잇 /2025.12.15 최상수 기자

후진하던 청소차와 전봇대 사이에 끼여 숨진 고(故) 김동철씨, 음주운전 차량이 들이받아 왼쪽 다리를 잃은 김석곤(70)씨, 그리고 서울 강남구와 금천구에서 취재진과 동행한 나인수(69)씨와 신재삼(60)씨. 세계일보가 만난 상당수 환경미화원에게 야간 근무는 오래된 관행이었다.

교통 체증과 출퇴근 인파를 피해야 한다는 이유, 소음과 악취로 인한 민원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사회는 이들의 야간 근무를 정당화해왔다. 당사자들은 야간 근무를 원하고 있을까, 아니면 선택지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것일까.

16일 세계일보의 ‘환경미화원 안전·건강 실태 설문조사’에서 환경미화원 10명 중 6명은 주간 근무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주간 근무 전환 필요성을 묻는 항목에 전체 응답자의 61%인 325명은 ‘주간 근무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7%(146명)는 ‘야간 근무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으며, 12%(65명)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주된 작업 시간대’를 묻는 말에 ‘주간(오전 6시~오후 10시)’이라고 답한 이들은 68%(365명), ‘야간(오후 10시~오전 6시)’이라고 답한 이들은 32%(171명)로 각각 집계됐다. 흥미로운 점은 야간에 근무하는 171명 중 절반에 가까운(47.4%) 81명이 ‘주간 근무 전환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야간 근무에 문제가 없다’고 응답한 이들은 75명으로 전체 야간 근무자의 43.9% 수준이었다. 주간 근무자 365명 중 주간 근무 전환에 공감하는 이들은 66.8%(244명)로 집계됐다.

자유 양식으로 접수된 총 184개 기타 의견에서 이들의 생각을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주간 근무 전환 관련 의견을 개진한 이들은 총 19명이었다. 이들 중 16명은 찬성, 나머지 3명은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주간 근무를 원하는 이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야간 근무 중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였다.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40대 환경미화원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아 부상 우려가 너무 심한 환경”이라며 “(종량제 봉투)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뜯어볼 수도 없기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안 다치는 게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꼬집었다.

대구·경북의 또 다른 30대 환경미화원은 “야간에 운전자들이 너무 세게 달려 무섭다”며 “캄캄할 때 (청소차가) 후진하다가 치여서 다칠 위험 요소가 있다”고 걱정했다. “새벽에 잠이 덜 깨고 피로가 누적된다”, “수면 부족이 사고 원인이 될 수 있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응답자들이 야간 근무 자체를 산업재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실제로 설문조사 중 ‘본인이 생각하는 산재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17%인 93명은 ‘야간 근무’라고 답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것도 주간 근무의 장점으로 꼽혔다. “가정이 있는 집안은 가족들이 함께할 시간도 없어지고 있다”, “저녁 있는 삶을 누릴 권리를 줬으면 한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다만 모두가 주간 근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주야간 근무 둘 다 해봤다”는 서울 거주 30대 환경미화원은 주간 근무 당시 느꼈던 애로사항을 상세히 설명하며 “야간 근무를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환경미화 포스트잇 /2025.12.15 최상수 기자

이 환경미화원은 “수거 작업으로 인해 차선을 막으니까 뒤에서 차들이 빵빵거리고 민원이 다수 발생했다.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며 “뒤에 차들이 있으니까 작업하는 데 계속 조급해졌다”고 돌이켰다.

부산·울산·경남에 거주하는 50대 문전수거원은 “주간 근무할 때 여름철에는 한낮 더위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또 “주간 근무의 임금 단가가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떻게 조사했나

 

세계일보가 실시한 ‘환경미화원 안전·건강 실태 설문조사’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9일까지 20일간 온라인 설문조사 플랫폼 ‘네이버 폼’을 이용해 진행했다. 총 536명의 환경미화원이 응답했으며 통계값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2%포인트다. 조사는 전국 민간 대행업체 노동조합과 회원 수 6만여명의 네이버 카페 ‘환경공무직연합’의 도움을 받았다. 설문지 구성은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가 자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