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의 확장억제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 제5차 회의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다. 이재명정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 이후 처음 개최된 이번 회의는 확장억제의 실효성, 핵·재래식 통합작전 강화를 위해 NCG가 양국의 정치적 환경 변화에 관계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이 한반도의 재래식 방위를 주도한다는 점을 처음 명시하고, 북핵 문제를 포함해 북한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
◆‘재래식 방위 한국 주도’ 첫 명시
김홍철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로버트 슈퍼 미 국방부(전쟁부) 핵억제·화생방 정책 및 프로그램 수석부차관보대행이 한·미 대표로 참석해 발표한 공동언론성명에는 한국이 한반도 재래식 방위에 대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NCG 공동성명에 처음 명기된 것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안보전략(NSS) 등에서 동맹국의 안보 부담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한반도에서 재래식 위협 대응을 주도한다면, 미국의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 대통령 임기 내 전작권 전환과 관련,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12일 한미동맹재단, 주한미군전우회가 공동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그 시간 내에 조건을 충족해야겠지만, 또한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이 대통령 임기인 2030년까지 전작권 전환을 이룬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한반도 연합방위를 주도할 한국군의 군사적 능력 등 전작권 전환을 위한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확장억제 공약 유지
미국 측은 핵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 한국에 대해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한·미는 정보 공유, 협의 및 소통 절차, 핵·재래식 통합(CNI), 공동연습, 시뮬레이션, 훈련을 포함하는 확장억제 모든 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핵억제 정책 및 태세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 대해 논의했다. 또한 핵억제 심화교육, NCG 모의연습(TTS), CNI 도상연습(TTX)이 한반도의 잠재적 핵 유사시 상황에서 동맹의 협력적 의사결정을 강화한다고 평가했다.
한·미는 공동언론성명에서 “NCG 대표들은 제57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결과를 토대로 NCG 과업의 실질적 진전을 지속 달성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며 “제6차 NCG 본회의를 포함한 2026년 상반기 NCG 임무계획과 주요 활동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북한 관련 언급은 없어
이번 5차 회의 공동언론성명은 5개 항으로 구성됐다. 지난 1월10일 윤석열·바이든 행정부 시절 열린 4차 회의에선 12개 항을 담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 관련 언급은 물론 북한이라는 단어조차 포함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변화다. 4차 회의에선 “미 측은 북한의 어떠한 핵공격도 즉각적이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북한의 어떠한 핵공격도 용납할 수 없으며, 정권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차 회의 공동성명에 포함됐던 ‘미 전략자산의 가시성 증진’이라는 표현도 빠졌다.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북한은 강하게 반발해왔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화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정상회담을 거론했던 만큼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한·미 확장억제력 유지·발전’이라는 NCG의 취지를 유지하는 ‘절충’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다만 NCG가 기본적으로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가동된다는 점에서 회의의 결과물에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핵보유 사실상 인정 등 오판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한국 국방부는 “한·미의 북핵불용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NCG는 2023년 4월 바이든 행정부 시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워싱턴 선언에 기반한 양국 간 상설 협의체다. 북핵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확장억제 운용에 한국이 일부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