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은 흔히 부패한 정부, 무능한 지도자, 싸울 의지가 없던 군대와 국민 탓으로 설명되곤 한다. 세계 4위 규모였던 남베트남군 역시 부패와 베트콩의 침투로 스스로 무너졌다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실제 전쟁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선택적 해석에 가깝다. 남베트남군은 허약하지 않았고 오랜 전투 경험을 축적한 숙련된 조직이었다. 부패와 비효율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만으로 1975년의 급격한 붕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결정적 변수는 남베트남 내부가 아니라 북베트남이 어떻게 준비하고 움직였는가에 있었다.
한국군이 안케패스 일대에서 고전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1972년 북베트남의 부활절 공세는 실패로 끝났지만, 북베트남은 실패를 교훈 삼아 다음 공세를 준비했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기갑·포병·공병 전력을 대폭 확충하면서 군대를 제병협동 기동전을 수행할 수 있는 현대적 정규군으로 전환했다. 동시에 호찌민 루트를 다축화해 대규모 병력을 한꺼번에 기동시킬 수 있는 구조로 바꾸었다. 특히 1973년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한 이후 북베트남군은 탐색전과 국지전을 지속하며 남베트남군의 대응능력의 취약점을 확인했고, 미국으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지 못했던 남베트남군의 전력을 서서히 약화시켰다.
이 모든 준비 끝에 시작한 것이 1975년 춘계공세였다. 북베트남군은 중부고원으로 대규모 병력을 조용히 이동시키며 전면적 기동전을 준비했다. 특히 중부고원의 핵심 거점인 부온마투옷 공격은 남베트남군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이루어진 전형적인 작전적 기습이었다. 북베트남군은 허위 교신, 의도적인 차량 이동, 가짜 공병 작업, 그리고 무선 침묵을 병행한 기만전으로 남베트남군이 주공 방향을 오판하게 만들었고, 바로 그 순간 단번에 전선을 돌파했다.
이제 남베트남군이 맞서야 했던 것은 과거의 게릴라 중심 비정규전이 아니라 속도와 화력을 앞세운 정규군의 기동전이었다. 중부고원이 무너지자 남베트남군은 이미 공군력과 보급이 붕괴된 상태에서 예비대를 모으거나 작전을 조정하고 재정비할 여유도 없이 후퇴해야 했다. 북베트남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남하를 가속했다.
결국 남베트남군은 싸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의 전력과 작전 수행능력에 압도되어 대응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졌다. 1975년의 패배는 단순히 남베트남 내부 붕괴가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 더 잘 준비된 북베트남군이 빈틈을 찌른 결과였다. 전쟁의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왜 졌는가?”뿐 아니라 “상대는 어떻게 승리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