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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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파면’ 정권에 책임 큰 韓의 대권 도전, 명분·비전 있나

기사입력 2025-05-02 00:00:17
기사수정 2025-05-02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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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어제 사퇴한 데 이어 오늘 6·3 대통령 선거 도전 의사를 밝힌다. 대통령 궐위 상태에서 그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위해 물러난 것은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당장 오늘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내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나면 김문수·한동훈 후보 중 승자와 단일화 협상에 나선다고 하니, 국민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조기 대선을 공정히 관리하고 가장 시급한 현안인 대미 관세 협상을 지휘해야 할 시점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내던진 처사는 대단히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다.

어제 대국민 담화에서 한 전 총리는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자 직을 내려놓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급변하는 통상 질서, 흔들리는 한반도 안보, 극단으로 치닫는 진영 갈등 등을 위기로 거론했다. 풍부한 국정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 이들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진영 갈등 해소만 해도 국민과 직접 만나 소통하며 반대 정파와도 협상하고 타협하는 정치력이 필수다. 선거에 한 번도 출마한 적 없는 한 전 총리에게 그런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한 전 총리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보좌한 행정부 2인자가 아니었나. 전임 정권의 파탄에 책임이 큰 지도자가 새로운 정권 창출에 나서려면 뭔가 명분이 있어야 할 텐데 현재로선 그게 안 보인다. 대통령 임기 단축 등 분권형 개헌을 내세웠으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데다 대국민 설득력도 떨어진다. 일각에선 그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를 겨냥한 이른바 ‘반명(반이재명) 빅텐트’의 단일 후보 자리를 노린다고 본다. 하지만 빅텐트 역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할뿐더러 그 파급력도 의심스럽다.

대권 도전에 앞서 한 전 총리는 윤석열정부 시절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막지 못한 것에 통렬한 사죄부터 해야 한다. 또 보수 진영의 ‘반명’ 구호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과도 차별화한 비전을 제시하길 바란다. 풍부한 국정 경험만 앞세워서는 앞서 같은 이유로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됐다가 결국 실패한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전철을 밟을 개연성이 크다. 보수 정당 역시 스스로 지도자를 키워야지 선거 때마다 정치권 밖에서 ‘구원 투수’를 찾아 모셔 오려는 행태만 반복한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다.